시(詩)/오세영

오세영 - 그리운 이 그리워

누렁이 황소 2021. 1. 14. 10:42

 

그리운 이 그리워

마음 둘 곳 없는 봄날엔

홀로 어디론가 떠나버리자

사람들은 행선지가 확실한 티켓을 들고

부지런히 역구를 빠져나가고

또 들어오고

이별과 만남의 격정으로

눈물 짓는데

방금 도착한 저 열차는

먼 남쪽 푸른 바닷가에서 온 완행

실어온 동백 꽃잎들을

축제처럼 역두에 뿌리고 떠난다

나도 과거로 가는 차표를 끊고

저 열차를 타면

어제의 어제를 달려서

잃어버린 사랑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운 이 그리워

문득 타보는 완행열차

그 차창에 어리는 봄날의 우수

(그림 : 설종보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