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신재희 - 섬진강 아낙들

누렁이 황소 2021. 1. 13. 12:07

 

바람에 찰랑이는 물결들

물위에 띄워놓은 고무대야도 아낙과 함께 출렁거렸다

이끌리듯 거랭이에 묶어놓은 줄

강이 허락한 만큼 재첩을 퍼 담을 수 있었다

 

생의 젖줄기 섬진강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오래된 문서였다

 

가슴께로 차오른 강을 꿀꺽 삼키며

손짓 발짓으로 모래밭에 묻어둔 말

목구멍으로 허기가 밀려들 때마다

고무대야를 끌고 강으로 나갔다

 

학교 문턱을 밟지 못했어도 강 한 채 달달 외우던 어머니

물살에 말아놓은 키만 한 거랭이로

삐뚤빼뚤 바닥을 긁었다

 

채우는 것보다 샛길을 읽어내는 일이

목숨이라던 할머니

물의 무게를 대충 저울질하지 말라고 하셨다

 

팔공산 기슭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섬진강에 머물 때

갱조개도 살이 오르고

탱자처럼 노랗던 술병 난 아재도 재첩을 먹고

뽀얗게 살이 붙었다

 

재첩이 제 껍데기에 무늬를 새길 때면

물의 입자들도 수런거렸다

강은 우리들을 자식처럼 키웠다

(그림 : 설종보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