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승해 - 저탄장이 있는 삼거리

누렁이 황소 2021. 1. 6. 11:04

 

 

반야월 저탄장 삼거리

영주식당 돼지국밥집 큰 국솥이 넘친다

한 그릇 국밥 퍼먹는 일에도

목이 잠기는 저탄장 삼거리

넘치는 국밥 혼자 퍼먹어며

연탄 냄새 맡는 일은

함께 등 지져 굽던 시간으로

되돌릴 수 없는 일과 같아

불문 열어 놓고

국솥만 활활 넘치게 끓이는데

집값에 떠밀려 여기까지 와서도

방구들 뜨끈히 데우지 못하는 것은

틀어막은 불문

하루 두 장 연탄으로 견디기 때문이 아니라

코 대고 흙내 맡던 두통의 기억처럼

뜨겁게 끓는 국밥

함께 퍼먹던 숟가락질 때문이다

 

이미 식은 방바닥으로 엎드려

아직도 술국 끓이는

반야월 저탄장 삼거리

 

반야월 저탄장(貯炭場) 삼거리

영주식당 돼지국밥집, 연탄화덕

큰 국솥이 넘친다

새끼줄 매듭에 묶여와

혼자 불콰하게 술국 끓이는 연탄,

한때 우리를 달구던 뜨거움은

넘치는 국솥에 함께 끓어

한 그릇 국밥 퍼먹는 일에도

목이 잠기는 저탄장 삼거리

 

뜨겁게 끓는 국밥,

혼자 퍼먹어며 연탄 냄새 맡는 일은

불문 열어 놓고 활활 타오르던 방

함께 등 지져 굽던 시간으로

되돌릴 수 없는 일과 같아

국솥만 넘치게 끓이는데

집값에 떠밀려 여기까지 와서도

방구들 뜨끈히 데우지 못하는 것은

틀어막은 불문,

하루 두 장 연탄으로 견디기 때문이 아니라

시커먼 소주잔, 혼자서 목구멍에 밀어 넣는 일의

낯설음 때문이다

 

낯선 것은

너무 오래 된 그리움 때문이다

(그림 : 이사범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