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신경림

신경림 - 가을비

누렁이 황소 2020. 12. 17. 09:48

 

젖은 나뭇잎이 날아와 유리창에 달라붙는

간이역에는 차 시간이 돼도 손님이 없다

플라타너스로 가려진 낡은 목조 찻집

차 나르는 소녀의 머리칼에서는 풀냄새가 나겠지

오늘 집에 가면 헌 난로에 불을 댕겨

먼저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셔야지

빗물에 젖은 유행가 가락을 떠밀며

화물차 언덕을 돌아 뒤뚱거리며 들어설 제

붉고 푸른 깃발을 흔드는

늙은 역무원 굽은 등에 흩뿌리는 가을비

(그림 : 김지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