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강석화 - 동백섬

누렁이 황소 2020. 12. 17. 08:36

 

동백섬을 돌아가면 인어를 만난다

귀 밝은 사람은 노래를 듣기도 한다

모래밭에 남겨진 숱한 약속들 바다에 씻겨

갈매기가 따라 부르고 파도가 장단을 넣어

광안대교 기나긴 다리마다 한 소절씩 새겨져

다리 밑을 지나다보면 노랫소리가 들려온다고

어느 취한 뱃사람이 말했다는데

얼마 전 그 곳을 지나며 나도 언뜻 들은 듯하다

늙은 해녀처럼 인어는 떠나고 이름만 남아

교각을 스치는 바람소리였는지 갈매기 울음이었는지

곰곰이 되새겨보니 해 지던 어느 바닷가에서

노을을 따라가며 그대가 부르던 노래

먼 바다를 떠돌다 마지막 남긴 물결소리였는지

옛 노래가 귓가에서 종일 파도치는 날

한결같이 기다려주는 인어를 만나러 섬으로 갈까

사람들 별빛처럼 멀어지고 노래방도 시들한 계절의 끝 무렵

희미해진 노래를 목청껏 부르고 싶어지는 날

해운대 포장마차에 들러 소주잔에 바다를 담아 볼까

객쩍은 농담으로 툭툭 마음을 털어내고

다시 추억을 만들려는 사람처럼 밤바다를 걷다가

이제는 동백도 지고 없고 섬도 아닌 섬으로

문득 생각난 듯 발길을 돌리면

한사코 파도가 매달리는 바위 모퉁이

인어의 울음소리 아릿하게 맴돌 듯한 밤

(그림 : 전희자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