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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해 - 잔치국수 한 그릇은

누렁이 황소 2020. 12. 10. 15:30

 

어머니 손맛이 밴 잔치국수를 찾아

이즈음도 재래시장 곳곳을 뒤진다

굶을 때가 많았던 어린 시절

그릇에 담긴 국수 면발과

가득찬 멸치육수까지 다 마시면

어느새 배부르고 든든한 잔치국수

굶어본 사람은 안다

잔치국수 한 그릇을 먹으면

잔칫집보다 넉넉하고 든든하다

잔치국수 한 그릇은 세상을 행복하게 한다

갓 삶아 무쳐낸 부추나 시금치나물,

혹은 아무렇게나 썰어놓은 김장김치 고명 위에

어머니 손맛이 밴 양념장을 끼얹으면

젓가락에 감기는 국수 면발이

입안에 머물 틈도 없이

목구멍을 즐겁게 한다

아직 귀가하지 않은 식구를 위해

대나무 소쿠리엔 밥보자기를 씌운

잔치국수 다발

양은솥에는 아직도 멸치육수가 뜨겁다

(그림 : 허영아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