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황인찬 - 흐리고 흰 빛 아래 우리는 잠시

누렁이 황소 2020. 12. 3. 11:43

 

조명 없는 밤길은 발이 안 보여서 무섭지 않아?
우리가 진짜 발 없이 걷고 있는 거면 어떡해

그게 무슨 농담이라도 된다는 것처럼
너는 어둠 속에서 말했지

집에 돌아가는 길은 멀다
가로등은 드문드문 흐리고 흰 빛

이거 봐, 발이 있긴 하네

흐린 빛 아래서 발을 내밀며 너는 말했고
나는 그냥 웃었어

집은 아주 멀고, 우리는 그 밤을 끝없이 걸었지
분명히 존재하는 두 발로 말이야

발밑에 펼쳐진
바닥없는 어둠은 애써 모르는 척하면서

(그림 : 이종화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