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원도이 - 맥주

누렁이 황소 2020. 12. 1. 08:56

 

당신은 황금빛이거나 흙빛이거나 무지개이거나 어두운 갈색이거나 언제든 병에서 빠져나오기를 기다리는

 

​ 잘린 목처럼 뚜껑이 나뒹굴기를 주둥이가 열려 온몸이 쏟아지기를 병 밑에서 그르렁거리는 세상이 터져 나오기를 기다

리는

 

숨 막히는 당신은 피도 눈물도 없는 자객에게 순식간에 목이 따지기를 기다리는 당신은 퍽, 하는 천지개벽을 기다리는

당신은, 그것이 거품일지라도

 

​당신은 어디서 왔을까 두줄보리알갱이에서? 보리밭 허공을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종달새 울음에서? 멈추지 않는 바람을

찢는 매미 울음에서? 사선으로 베어진 보리줄기 그 밑동에서?

 

​ 당신은 거품 속에서 꽃잎으로 태어나길, 붉은 갈증의 입술에 달라붙기를, 갈라터진 어느 입술을 지나 메마른 입천장을

지나 길고 어두운 구멍을 꿈꾸는

(그림 : 이두한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