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은기찬 - 황태처럼
누렁이 황소
2020. 11. 27. 10:42
두 눈 뜨고 나온 길을 되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에
너울거리던 햇살이 울컥 붉어진다
하루의 끝에 매달려 버둥대는 맘 알까
알전구처럼 나는 포장마차 구석에 앉아 있다
바람을 맞으며 세상은 펄럭이고
나는 홀로 여위어가고,
보풀음 잘게 뜯어 속을 채우는 동안에도
떠밀려가는 무리들.
애당초 한 곳만 보며 몰려다닐 팔자였지
줄지어 다니다 줄지어 꿰이는 와중에도
소리소리 질러 봐도
나오는 건 없고 속만 퍽퍽해 지던 기억
나서지 말거라,
아침 햇살에도 눈을 감지 못하던 어머니는
그 말씀이셨다
아무리 파도가 희번뜩여도
생활만큼이야 뼛속을 파고들겠느냐고
뽀얗고 깊은 맛이 어금니께에 고일 즈음
뒤척이던 노을이 소주잔에서 멈춰 선다
속 비우고 산 지 오래
얼었다 녹았다, 얼었다 녹았다 썩을 것도 없지, 이젠
얼부풀어 말라가는 내 뼈를 추려
내일은 누구의 속을 풀어주고
그 다음은 누구의 허한 데를 채워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는 채 신물은 터져 나오려는 속을 긁었다
돌아 갈 길을 잃은 사람들 뒤에서
소줏잔을 내려놓는 소리
탁, 바다가 언뜩 비쳤다
(그림 : 허정록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