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양소연 - 부표가 거기 있었다

누렁이 황소 2020. 11. 12. 17:23

 

거기서도 꿈을 꾼 기억은 없다
사랑을 찾고 헤어지고 상사병에 시달리느라
꿈 꿀 겨를도 없던
사랑으로 아플 수 있었던 유일한 시절


그쯤에서 사랑해보길 잘했다
이제는 못 해볼 사랑
사랑에 빠져 모두를 놓쳐 버리고 허우적거렸어도
아무것도 따져 보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그런 사랑 해 보길 잘했다


이제 사랑도 계산속이고
산다고 사는 게 뒷걸음질일 때
힘주어 가라앉혔던 풍선이 다시 부풀어 오르듯
그 언덕이 나타난다


물속에 넣어도 넣어도 다시 떠오르는 부표


여름비 세차게 오던 날
빨간 반바지 입은 긴 머리 스물한 살
우산을 쓰고 내려왔다
노량진, 그 언덕을 지나왔다

(그림 : 전소영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