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윤성관 - 게
누렁이 황소
2020. 11. 8. 11:41
물 빠진 뻘에 게 한 마리 돌아다닙니다
기는 데 이골이 난 그는 천적이라도 만날까 두려워
방방 뜨는 일 없이 손과 발은 바닥에 바짝 붙이고
눈물 마른 두 눈은 높이 세워 쉼 없이 굴립니다
뒷걸음질은 비겁해보이지만
정면으로 맞서기엔 오금이 저려 옆으로만 기어갑니다
노을이 온몸에 번질 때면
퇴화된 집게발로 허공에 삿대질하며
내일은 기필코 앞으로 나아가리라 거품을 물지만
어김없이 물은 다시 들어오고
그와 나는 잽싸게 어깨동무하며
굽이굽이 파놓은 땅굴로
숨어들어갑니다
(그림 : 이경희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