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이도훈 - 안도하는 저녁

누렁이 황소 2020. 11. 1. 20:51

 

잘못 든 골목은
늘 십이월 윗목 같다.
봄은 멀고 다시 올 것 같지 않아
모든 주인은 점점 구석으로 웅크린다.
허술하게 닫힌 문 안쪽들도
돌아눕는 일이 고작이다.
뒤늦은 후회나
미지근한 등 쪽의 전기장판 같은
왕년의 일들이나 떠올리면 다행이겠다 싶은
골목의 이집 저집들.
한 걸음 한 걸음
어둠이 지붕 위로 올라가고 있다.


집 한 칸 변변치 못한 내일을
온몸 덜그럭거리며 왔다.
오히려 창문을 닫은 집들이 이제는 정겹다.
간신히 목을 뺀 연통에서
흰 안도감이 폴폴 새어 나오는 것을 보며
다행이다 싶은 저녁,
끊어질 듯 이어지는 연통의 연기 끝에서
오래 끊은 뒤끝의 눈물 같은
녹슨 물 한 방울 떨어졌다.
미지근한 목덜미를 닦으며
차가운 골목의 저녁을 안도한다.

(그림 : 박용섭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