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성영희 - 이동 만물상
누렁이 황소
2020. 10. 30. 16:52
한적한 마을에 만물트럭이 지나간다
늙수그레한 남자와 동승한 여자 목소리는
옆자리에 앉지도 않고
평생 늙지도 않는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만으로도 설레는
바깥노인들
아이가 없는 집에서 우유를 사고
남편이 없는 집에서 국수를 산다
사탕 한 봉지를 사는 할머니는
일주일 동안 입안을 굴리며 말 상대를 대신할 것이다
마시멜로는 손주들의
달콤한 말맛이어서 좋고
잇몸의 사정을 잘 헤아리는 두부는
무를수록 부드러워서 좋다
사탕은 평생을 통틀어
가장 달달한 대답 같다
늙은 마을에
어린 입맛들
농번기에는 모두 흙 묻은 손이다
트럭이 돌아 나가는 저녁처럼 어둑한 손끝들
외상은 몇 달이 지나도
이자를 늘리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벌써 2주째 보이지 않는 얼굴이 있다
거슬러 주지 못한
잔돈 같은 소식들
이 마을에서
묻지 말아야 할 안부도 있다
(그림 : 송재진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