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허림

허림 - 시월이 가기 전에

누렁이 황소 2020. 10. 27. 18:52

 

아직 시월이 다 가지 않았으니

시월에 해야 할 사랑도 남은 것이다

 

시월에 오는 사랑은

내 곁두리를 맴돌고

푸른 이마를 조금씩 떨쳐내며

붉고 노란 작은 손을 내밀 것이다

 

시월에 왔으면 하는 바로 그 사랑은

살금살금 다가와서

눈을 가리고

"누구게" 하고 속삭일 것이다

 

나는 짐짓 그가 누군지 뻔히 알면서도

손을 만져보고

목소리를 더듬으며

먼 먼 기억의 처음을 끌어내 늘어놓는다

 

시월의 사랑은 이미 와 있었는데

너무 멀어 보이지 않았을 뿐

아직 시월이 다 가지 않았으니

시월에 해야 할 사랑은

더 붉어질 것이다

(그림 : 이영철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