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문성해

문성해 - 난초도둑

누렁이 황소 2020. 10. 24. 19:16

 

도둑이 되려면 난초도둑쯤은 돼야지

돈다발과 패물을 자루 속에 쓸어 담기보단

하나에 몇 억 한다는 난초 분 하나는

업고 나와야 일등 도둑이지

 

천하의 도둑은 장물의 맘을 살펴야 하는 법

그 가는 옆구리들의 떨림에 집중해야 난초도둑이지

암, 뒤꿈치를 들고

 

허공에 한 획을 긋는 난초들처럼

나도 세상에 나서 큰 도둑이나 한번 돼 보아야지

 

밖에서 트럭은 부릉부릉 빨리 서두르라지만

나는 개의치 않을 거야

귀를 찢는 보안벨이 울려도

천천히 걸어 나올 거야

 

나 같은 것 백 명은 팔아도 못살 그것을

내 천한 심장 가까이 기대인 채로

 

난 민들레 씨앗 내려앉는 언덕에다 그것을 심어 줄 테야

더덕더덕 억센 뿌리를 내리게 둘 거야

몇 억을 눈 녹듯 사라지게 할 거야

 

왕후의 자리에서 여염의 촌부로 만들어 줄 거야

다시는 뽑아 가지 못하게 하늘을 끌어당겨 가려 줄 테야

(그림 : 김영철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