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지란 - 품삯

누렁이 황소 2020. 10. 18. 09:11

 

선원 월급 주는 날

지폐를 헤아려가다

생선 비늘이 말라붙은 만 원짜리 한 장

돈을 세는 내 손가락을 붙잡고 만다

 

돈에다 빨간 볼펜으로 꾹꾹 눌러쓴 ‘멸치 두 상자’

긴박한 생이 화석처럼 멈춰있다

 

꼬박 달포를 바다로 나간다는 멸치잡이 어선,

아버지의 품삯으로 건네 온 비릿한 것들

경매도 부쳐지지 못한 채

어머니의 발품 행상으로 살림 밑천이 되었던 멸치

 

구깃구깃한 만 원짜리 한 장

누군가의 충혈된 눈동자를 거쳐

어부의 딸을 용케 알아보았는지

검게 탄 아버지의 얼굴로 찾아왔다

 

먹먹한 수평선을 건너오는 아버지의 바다

지폐 한 장에 몸을 싣고 위태로운 파도를 넘고 있다

(그림 : 구성희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