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이철 - 완행열차와 어머니

누렁이 황소 2020. 10. 9. 18:13

 

장날 아침 새벽 열차는 찐 옥수수며

푸성귀를 싣고 어머니의 마지막 가을을

나르고 있었습니다 기적을 울리며

간이역에 마음을 푸는 완행열차가

잊을 만하면 찾아들던

한철 아버지의

오래 앓은 기침 소리인지도 모릅니다

기찻길 옆 살구나무 집

함부로 철길을 건너가던 누이는

해마다 봄눈으로 내리고

때늦은 저녁을 기다리며

이슬 젖은 철길을 걷다 보면

노랑제비꽃이 버짐처럼 피던 집

어느새 어머니는 몇 마리

붕어빵을 바구니에 담아

어미 물고기처럼 돌아오곤 하였습니다

문풍지를 긁는 애바람 소리에 꿈은

몇 번이나 뒤바뀌곤 하였지만

그때마다 가만가만 이마를 짚어오는

어머니의 마른 손바닥에는

청색 손금이 푸른 선초처럼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림 : 김지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