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허림
허림 - 도토리
누렁이 황소
2020. 10. 8. 17:26
참나무 꽃을 본 적 없다니까
촌놈이 그것도 못 봤냐 그러면서 도토리를 줍냐
정말 참나무는 꽃을 피우기나 하는 걸까
참나무 꽃을 꽃으로 보지 않은
그야말로 꽃을 꽃으로 보지 않은 탓이다
누가 꽃을 정의하였나
분명, 피고 지는 참나무 꽃
꽃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편협한 고집들
세상의 꽃은 허울과 허물을 쓰거나
화장을 하고 밤의 조명 아래서 유혹하는
수천수만 빛의 광란이기도 한
꽃에 대한 오만과 편견이 꽃으로 피었으니
나도 꽃이다 꽃이면서 꽃인 척
참나무는 참회록 한 줄 쓴 적 없으나
어두운 지붕 위 툭 툭툭 선잠마저 깨우는 가을밤
내 생의 저쪽에서는
도토리 주워놔 묵 쑤어 먹자
문자가 날아오고 있다
(그림 : 안정균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