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류홍 - 빙하기를 건너온 맥박
누렁이 황소
2020. 9. 24. 18:23
한 번쯤 별을 바라보듯
구상나무 주목을 만나고 싶어
만추의 산 그림자를 지고
한마루 오르면 고사한 가지들
또 한마루 오르면 심장이 까맣게 타버린 고사목이 서 있다
윗세오름 등성을 지나
정상에 가까울수록
무릎을 꿇고
무릎으로 걸어가는 나무들
정상까지는 힘들고 그냥 내려가기는 아쉬운 시간
불꽃 구름 매서운 바람에 흔들린다
산의 숨구멍 자갈길 자갈밭에서
절뚝거리며 만난 주목 구상나무
빙하기를 살아온 너와 나
죽어서도 천년을 버티겠다고 꼿꼿하게
아름다웠다, 죽음까지도
아니, 죽어서 다시 살고 있다
그곳에서
고사목의 맥박이 뛰는 소리를 듣는다
(그림 : 김지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