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송경동

송경동 - 막차는 없다

누렁이 황소 2020. 9. 19. 19:18

 

비 그치고

막차를 기다리고 선 가리봉의 밤

차는 오지 않고

밤바다 쪽배마냥 작은 리어카를 끌고 온

한 노인이 내 앞에 멈춰 선다

 

그이는 부끄럼도 없이 휴지통을 뒤져

내가 방금 먹고 버린 종이컵이며

빈 캔 따위를 주워 싣는다

가슴 한 가득 안은 빈 캔에서 오물이 흘러

그의 젖은 겉옷을 한 번 더 적신다

내겐 쓰레기인 것들이

저이에게는 따뜻한 고봉밥이 되고

어떤 날은 한 소절의 노래

한 잔의 술이 되어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니

목이 메인다, 눈물이라도 돈이 된다면

내 한 몸 울어줄 것을. 어둔 밤

나는 무엇을 기다리고 섰는가

 

저기 두 눈 뜨고도 말 한마디 못하고 선

내가 실려 가는데

저기 두 눈 뜨고도 말 한마디 못하고 선

한 세월이 멀어져 가는데

(그림 : 권대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