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박영희 - 틈

누렁이 황소 2020. 9. 7. 18:49

 

골목길 정사각형 보도블록 틈에

뿌리내려 파르르 고개 쳐드는

저것들, 어쩌면 나도

저 틈에서 생겨났는지 모른다

밀리고 밀리다 골목 안 어디쯤

뿌리내리려다 문틈에 끼어 피멍 들고

취객의 구둣발에 비명을 내지르기도 하면서

예까지 왔는지 모른다

서너 차례 어금니 악물고 꽃도 피워보았으나

불러주는 이 없어 시들해지고만

저것들, 보트피플처럼 떠밀려오다 지쳐

뿌리내린, 간신히 손가락 하나 쑤셔 넣을

틈에서 숨 쉬고 기지개를 펴며

아침이 밝았다고 난쟁이 춤 추며 웃는,

누가 덤비면 어쩌나 싶어 지레 겁먹고는

따개비처럼 스크럼을 짜고 있는

저것들,

저것들…….

(그림 : 한부철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