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경선 - 날개를 깁는 여자

누렁이 황소 2020. 8. 19. 18:14

 

수십 년을 재봉틀에 앉아 날개를 깁는 여자

한 번도 시린 날개를 펴지 못해 앉은뱅이가 된 여자

퇴화된 날개를 방석 삼아 바느질을 한다

태양의 빛을 낚아 동정으로 달고

나무를 심어 열두 폭 크기로 날개를 저장한다.

꽃술에 날아드는 벌, 나비

날개를 수선해 주는 여자

날개의 비밀을 지켜주다 시력을 놓친 여자

돋보기 속에 날개란 날개는 다 감추어 놓고

절대 꺼내 자랑하는 법이 없다.

 

여자의 주소는 재개발동 접근금지호

 

날다가 죽을 너

걷다가 죽을 나

가볍긴 마찬가지

 

내 날개 오래전 끈 떨어졌어도

나에겐 기부할 날개가 남았단다.

날아봐라 날아봐 날개가 자랄 테니

살아봐라 살아봐 날개가 보일 테니

깃털에 꽂히는 여자의 자작 타령

그 여자 반찬은 시어터진 김치 한 조각

그 여자 낡은 골무처럼 굽은 등 새털 날개 푸르게 돋네.

(그림 : 김형구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