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최영철

최영철 - 암각화의 말

누렁이 황소 2020. 8. 19. 16:55

 

네가 너에게 보낸 오래전 그 말

몰래 보고 혼자 가로챌까 봐

지워지지 않을 자리에 그려 둔 그 말

저만큼 찢어 날려 버릴까 봐

수수만년 비와 바람이 시샘하여도

꼭꼭 붙잡아 가슴에 안아 끄떡없도록

저리 버티고 선 등판에 박아 둔 말

영영 아주 먼 데를 찾아 헤맨 너를 향해

자꾸 손 흔들어 부르고 있는 말

귀먹어 못 알아들을까 봐

까막눈이라도 더듬어 알아듣도록

저리 공들여 새겨 놓은 말

아직 한 번도 주고받지 못하였으나

아직 멀리서 웅성대는 소리에

바위 문을 밀치고 나와

네가 너를 맞이하고야 말 그 말

바위의 귀가 꼭꼭 담아 놓고 있다가

네가 너를 얼싸안을 때

터져 나오고야 말 그말

(그림 : 이혜민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