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복효근

복효근 - 이후

누렁이 황소 2020. 8. 14. 16:50

 

나 때문이라 말했지만

너 또한 너 때문이라 했다

맞지 않은 말이지만 맞는 말이기도 했다

 

때로 과도한 반성은 서로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해서

날아가는 새에게도 허허로이 손 흔들어보는 아침이다

 

우린 살아있을까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지금 너에게 비가 오고

내게도 비가 내린다면, 구름이 지나간다면

 

식어가는 차를 마저 마시며

남은 몇 개의 잎사귀에도 가만한 눈빛을 줄 일이다

 

그러해야 하리라 생각도 해보지만

그러지 않아야 할 이유도 세상에 얼마든지 있어

사랑을 핑계로 삼는 일은

비를 구름을 저 풀잎들을 미안케 하는 일이므로

 

굳이 말하지 않는다

다만 왔다, 스쳐갔다, 지나갔다 믿는 것뿐이다

 

부질없으나

그 부질없으므로 식은 찻잔에도 너는 있고

잎사귀에 맺힌 빗방울에도 너는 있다고 믿으며

처음 같은 눈길을 주어보는 것이다

(그림 : 설종보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