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문덕수 - 계단

누렁이 황소 2020. 8. 13. 18:36

 

계단으로 굴러내려가는 돌들이

한동안 찢어지는 아픈 소리로 울부짖다가

깊은 물 속에 빠진 듯 잠잠해진다.

계단으로 굴러내려가는 돌들이

나뭇가지처럼 길쭉하게 뻗다가는

달빛에 살기 띤 날을 세우고

가끔은 모난 루비로 빛난다.

돌들이 굴러내려가는 맨 끝에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서는 사나이가 있다.

스치고 부딪칠 때마다 발을 찍히고

돌무더기를 꽃잎처럼 안고 쓰러졌다가는

일어서고 일어서곤 하는 사나이도

인제는 돌이 되어 올라간다.

(그림 : 박용섭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