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종겸 - 골목어귀에서

누렁이 황소 2020. 8. 8. 18:25

 

가로등 불빛이

쓰레기더미 위에 곤두박질치고 있다

 

비밀번호를 갖고 있는 발걸음은 재빨리 골목으로 사라지고, 지렁이의 꿈틀거림처럼

골목은 어둠 속에서 어둠을 해산(解産)한다

 

골목의 끝은 어디인가

추락의 끝은 어디인가

 

사람마다 골목이 같을 수 없듯

어둠은 같을 수 없다

 

숨죽인 연탄재 옆에서 추위에 떨며 골목을 한참동안 바라보다가 어둠보다 가벼이

욕망을 내려놓고, 추락이 시작이고 시작이 추락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추락하는 건 날개가 있다고 했는데

어둠도 날개가 있을까

 

어둠을 밝히는 건 불빛이 아니라, 타다만 연탄재가 아니라, 자유스러운 영혼이란

걸 이 새벽 연탄재처럼 밟혀본 사람은 안다.

(그림 : 김구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