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엄영란 - 양철 지붕에 비가 내리는 동안
누렁이 황소
2020. 8. 8. 18:08
나팔꽃이 젖었습니다
양철 지붕에 비가 내리는 동안
배롱나무가 젖었습니다
양철 지붕에 비가 내리는 동안
봉숭아 여문 씨방이 터지고
터진 씨방이 젖었습니다
양철 지붕에 비가 내리는 동안
높거나 나지막하게 쌓인 담들이 젖었습니다
양철 지붕에 비가 내리는 동안
구부러졌다 곧은
길들이 젖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동안
양철지붕은 비를 안아 들이고
제 안의 소리를 토해 냅니다
그 밖의 소리들이
아득해 집니다
(그림 : 김명숙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