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남극 - 잠깐 오는 비

누렁이 황소 2020. 7. 21. 17:06

 

더덕 잎 부서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잠깐 더덕 냄새가 뜨락까지 닿았다가 사라졌는지

낙숫물 떨어지는 곳에도 냄새가 난다

나팔꽃 나팔 소리 멈추고 입을 닫았다

잠자리 날아간 바지랑대 끝

소매는 소매끼리 가랭이는 가랭이끼리 빨랫줄에서

턱턱 살결 없는 살 무딪는 소리가 난다

빨래 걷는 앞집 할머니 신발 끄는 소리 따라

앞산에서 콩새가 잠깐 울었다

 

고추장 단지를 덮으러 간 장독대

패각을 질질 끌고 배춧잎에 붙어선 달팽이

줄기 속 섬유질을 삭삭 갉아먹는 소리가 들리다가

후두둑 빗소리에 잠겼다

이 오지의 생활을 패각처럼 뒤집어쓰고 방바닥에 엎드려

양철지붕에 튕기는 빗소리 듣는다

패각에 구멍이나 안 날는지

안달하며

안달하며

(그림 : 전성기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