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이경숙 - 폐역 영상

누렁이 황소 2020. 7. 9. 11:00

 

나는 씹다 버린 껌이요

연극이 끝난 후 텅 빈 객석이요

떠나간 연인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잊혀진 여인이다

 

있어도 없는 듯이,

 

팔다리가 잘려나가고 몸뚱이만

휑하니 남아있는 전시실

박제된 추억이 전시되고 있다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엉거주춤 상태

 

묻지 못할 말을 바람에 손짓하고

듣지 못할 말을 해살에 기별한다

시간은 바람벽에 정지되어 있고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꿈에서 깨어나도 다시 꿈을 꾸는,

연착된 기차가 플랫폼에 걸려있는

그런 날들,

 

봄날은 간다

(그림 : 김지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