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이영옥 - 오필리아

누렁이 황소 2020. 6. 22. 17:32

 

어떻게 피운 텅 빈 미소인데요

가시가 내 눈을 찔렀으니

나는 가시를 버렸습니다

 

불을 끈 물속에

피 흘렸던 낱낱의 손가락을 던져버렸는데

포장된 장미 다발은 그걸 몰라요

 

장미가 실수한 것은

담장과 아치의 기능을 동일시했다는 것

하늘을 찌르는 대단함은

누군가를 떠미는 힘으로 높이를 지켰고

발끝으로 걷는 외로움으로

나는 꿈속에서조차 헛발을 딛습니다

 

겨우 몸을 심은 물 속

사랑은 목적도 없지만 예의도 없어요

죽고 싶은 마음과

살고 싶은 마음이 나란해지면

아득한 뿌리의 시간으로 뛰어들 수 있어요

 

딱 한번 뒤돌아 본 죄로

나를 지킬 수 없었지만

건반처럼 튀어 오르는 손끝을 열면

가시에 긁힌 흔적에서

셀 수도 없는 흰 꽃들이 피어났습니다

(그림 : 예진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