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최연희 - 봉숭아 꽃물 들이고 싶다
누렁이 황소
2020. 6. 17. 17:18
나의 손등에 검버섯이 생겼다
부추며 고추 채소가 내 손길을 기다린다
손바닥엔 굳은살이 배겼고
만지는 것마다 생채기를 내지만
장갑에 의존하지 않고
맨손으로 풀을 멘다
네일아트 한번 해보지 않아
거친 손으로 신는 스타킹
번번이 올이 튀어
입어보지 못한 치마
오늘도 나는 몸배 입고 장화 신고
녹슨 호미를 들고 풀밭으로 간다
하얗고 매끈했던 손
흙 만지고 햇살과 벗하다 보니
손등에 꽃이 피었다
예쁘다 어여쁘다 내 손
손톱 끝에 풀물 들어
내 손톱에 둥지 틀고 사는 것들
긴 세월 함께하는 벗
노후를 같이 보낼 수 있으니
외롭지 않다
어느 날 나의 손톱에도
봉숭아 꽃물 들일지 몰라
이 또한 나의 행복이 아닐는지
(그림 : 신재흥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