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조용미

조용미 - 내가 없는 거울

누렁이 황소 2020. 6. 7. 19:40

 

자다 깨어 거울 앞 지나다 얼핏 보니

내가 보이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잠깐 잘못 본 건가

다시 거울 앞으로 가기가 겁이 난다

 

거울 속의 나는 통증을 알지 못하여

이 시간까지 책상에 앉아 있다가

잠시 방심하고 내가 자고 있는 사이

자리를 비운 것이다

 

멀쩡한 몸을 감당하지 못하는 따분함도

그 아무 일 없음의 열락도 차마 모르는,

몸의 비루함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순정한 내가 저기 있다

 

여태 그가 보여주는 것만 보았다

누군가 아마도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살고 있을

진지함을 가장한 저 세계는

지금 이 순간의 나와 가장 먼 거리에 있다

 

일어나 거울을 들여다보아야겠다

나와 마주치기 꺼려 하는 차갑고

말이 없고 고독하고

복잡한 내가 저곳에 있다

 

몸을 씻고 나면 늘 마주 보게 되는

그 시간만은 정확하게 잊지 않고 나타난다

거울 속엔 몰래 사는 것들이 많다

내가 없는 거울을 들여다보아도 되는 걸까

(그림 : 서정인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