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효복 - 익명으로 산다
나는 명백히 팔다리를 가지고 태어났다
인간의 탐욕에 일조하는 매끈한 사출물
생몰연대는 바코드에 남은 채 매립지 귀퉁이에 버려질 쓸쓸한 합성수지
익명의 몸이지만 생의 이면은 화려했다
실업의 나날이다
채용자료 검색을 한다 궁색하게 무료 와이파이에 매달린다
모아놓은 급여가 바닥이 났다 매끈하게 연마된 학력과 경력
머니의 경제학을 앞에 두고 평가절하 되고 있다
바코드를 찍고 포스기를 두드린다
나만의 파란 지니가 흘러나와 주인님을 외치기를
누군가의 불행이 내 행운이기를
이 우울에는 눈물이 없다
마음의 거처도 없다 나를 거쳐 간 무수한 이력들
한 번도 내 것인 적이 없던 것은 잊기로 한다
희망이라는 이물스러운 말이 식도 어디쯤에 걸리적거린다
생글대는 안면 유리섬유로 볼륨을 넣은 몸 완벽을 원했던가
우린 체온 없는 인형 슬프고 하등한 종족
켜켜이 쌓인 금형 속에 무수한 내가 있다
시린 알몸의 창백한 몽상가들
오늘도 나를 위한 마케팅이 시작된다
마네킹과 구직자가 서로의 페르소나를 읽는다
페르소나(persona) : 본디 연극배우가 쓰는 탈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그것이 점차 인생이라는 연극의 배우인 인간 개인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철학용어로는 이성적인 본성(本性)을 가진 개별적 존재자를 가리키며, 인간 ·천사 ·신 등이 페르소나로 불린다. 즉, 이성과 의지를 가지고 자유로이 책임을 지며 행동하는 주체를 말한다. 또 신학용어로는, 의지와 이성을 갖추고 있는 독립된 실체를 가리키며, 삼위일체의 신 곧, 제1페르소나인 성부(聖父), 제2페르소나인 성자, 제3페르소나인 성령을 이르는 말이다.
(그림 : 조새별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