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박언숙 - 드라이플라워

누렁이 황소 2020. 5. 31. 05:33

 

영원히 변하지 않겠다는 굳은 약속

바람 앞에 지킬 수 없음을 알게 된 후마음은 여려 속절없이 허물어지는 여자온 몸 물에 젖어 날마다 새파랗게 떨던 여자

마침내 마음자리 묶어 거꾸로 매달려진 여자

짓궂은 바람이 쉴 새 없이 흔들어대는 창가솜털 하나 빠짐없이 꼿꼿이 날 세우는 여자

길고 지루했던 생애 마음은 버리고 몸만 남긴 채 꼬장꼬장한 영혼의 뼈대만 아프게 버티고 있다

질끈 봉인한 은밀한 추억 한결 느슨해지고

수시로 그렁거리던 눈물 흔적 하얗게 지운 오후드디어 저 여자 영생불멸에 드는가 보다

잠시 캄캄하고 부쩍 가벼워졌다

오, 저런

부서지는 기억일랑 그저 바라보기만 하라고

저 허공이 붙들고 있는 등신불 같은

(그림 : 박태준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