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김순진 - 감자의 눈

누렁이 황소 2020. 4. 19. 13:16

 

감자는 눈으로 아이를 낳는다

우묵한 눈으로 어두운 땅속 세상을 바라보았다가

무르고 기름진 땅을 골라 아이를 낳는다

씨감자의 눈에서 나온 탯줄로 길러지는 감자의 아기

씨감자는 두 토막 세 토막 잘려진 몸으로도 본분을 잃지 않고

한 번도 나가보지 않은 세상으로 새싹을 밀어 올린다

무서운 세상에 나와 그 여린 잎으로 햇볕을 모으고

바람을 끌어들여 제 숨을 나눠주며 어린 감자를 길러낸다

그리고 마침내 제 몸보다 큰 감자를 길러냈을 때

제 눈보다 많은 감자를 길러냈을 때

감자 싹은 시들고 감자는 땅속에서 일가를 이룬다

 

자식이 눈에 밟혀 못 먹겠다거나

눈에 넣어도 시지 않다던 우리네 엄마가

그윽한 눈으로 우리를 길러냈던 것처럼

(그림 : 강요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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