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노수옥 - 봄엔 다 그래요

누렁이 황소 2020. 4. 11. 14:18

 

 

우리 집 자(尺)들이 조금씩 자랐어요

그만큼 세상의 길이들은 줄었겠지요

의자들은 부풀고요 치마들은 뚱뚱해졌어요

언니들은 뒷굽을 조심해야 해요

평지들이 뒤뚱거리니까요

 

봄엔 다 그래요

할머니는 초록 머리카락이 새로 나고

흔들리던 이빨은 모두

새로운 뿌리가 생겨 단단해졌대요

지친 아지랑이가

노인의 이마에 와서 눕고요

삼각 혹은 길쭉한 씨앗도 모두

동그란 열매를 생각한대요

 

나도 새로운 말투로 말 몇 개를 바꿔야겠어요

말은 관계들 사이를 헐렁하게 풀어놓고요

이름마다 보풀이 일어나요

저녁이 되면 전등이 저벅저벅 걸어와요

조심해, 그건 넘어지는 방법이야

새로운 말투로 알려주고 싶어요

 

봄의 모서리가 줄어들면

태양은 더 둥굴어지고

밤은 착한 마음씨처럼 훈훈해져요

창문은 문틈에 푸른 귀를 매달아요

다 자란 삼각자는 삼각을 낭비하고요

줄자는 길이를 낭비해요

그건 헤픈 것이 아니래요

길이를, 사이를 줄이려는 거래요

봄엔 다 그렇대요

(그림 : 손미량 화백)

 

 

Antonio Vivaldi - La Primavera in E RV.269   

1. Allegr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