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신재희 - 하염없음에 대하여

누렁이 황소 2020. 4. 11. 14:12

 

 

하염없음은
바위가 쪼개지고 쪼개져 한 알 한 알 모래가 되어가는 것

 

모래밭을 드나든 파도의 뒤꿈치가 조금씩 닳아가는 것

 

날마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하염없음으로

 

어느 날 뒷산이 언덕보다 낮아지고
무덤들이 이름을 지우고 평지로 돌아가고

 

저쪽 숲으로 날아간 새가 돌아오지 않는 것
둥지에 남은 기다림이 마르고 말라 흔적조차 없어지는 것

 

노숙자의 비닐봉지에 담겨
하염없이 도시를 떠도는 때 절은 기다림 같은 것

 

부치지 못한 편지 한 장이
서랍 속에서 낡아가는 것처럼

 

몸에서 빠져나간 것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렇게,
하염없음은 하염없이 흘러가는 것

(그림 : 안기호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