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이상인 - 사골

누렁이 황소 2020. 4. 9. 13:40

 

 

둥근 무쇠 솥뚜껑을

연신 들썩이는

울음소리의 의미를 알 것도 같다.

 
뜨거운 입김을 씩씩 불며

도대체 하고 싶은 이야기가 구름 책

몇 권 분량인가.

 
훌훌 들이마시며 살아온 세월

장작불에 은근해질 때

사지가 붙들고 다니던 그 큰 집은

이미 헛방으로 사라지고

함께 걸어온 길들마저 아궁이에 넣어져

일순간 검은 연기로 승천하는데

부지런히 걷고 뛰어온 다리만 붙잡혀

뿌연 이야기 진하게 배어나도록 요동친다.

 
워, 워, 소리쳐도

멈추지 않는 시간의 그림자

지푸라기 같은 질긴 인연을 되새김하던

수많은 나날의 지워지지 않는 생채기여.

 
장작불은 질기고 모진 혓바닥으로

꾹꾹 밟아온 생애를 뜨겁게 핥아대고

비로소 고삐 풀린 바람이

울음 없는 울음소리, 둘둘 말아

먼 길 떠난다.

(그림 : 오수진 화백)

 

Ernesto Cortazar - Chariots Of Fi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