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정영선 - 앉은뱅이 밥상
누렁이 황소
2020. 4. 8. 11:21
오늘은 식탁을 놔두고 낡은 상에 밥을 차려 먹는다 청암동 비탈진 곳 구멍가게 뒷집 문간방과 가난해도
좋았던 나의 신혼과 함께 먹는다
연탄불에 갓 지은 냄비 밥과 석유곤로에 끓인 국과 소찬 몇 가지 정갈하게 앉히고 서른 살 신랑 앞에 다
소곳이 내놓았던 작은 밥상
밥은 설고 국은 짜고 반찬은 싱거웠지만 밥상 앞에 마주 앉은 신혼 입맛은 딱, 두 가지여서 고소하거나
달콤했다
탱탱했던 내 얼굴이 늘어지고 골이 생겼듯, 옻칠 발라 반질거렸던 상 얼굴도 찰과상에 다리 관절은 삐걱
거린다 우린 사이좋게 나란히 늙어간다
훤칠한 6인용 식탁에 곳간 열쇠 다 내주고
(그림 : 허영아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