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문정영

문정영 - 자전거도둑

누렁이 황소 2020. 4. 2. 08:41

 

 

사슬 묶는 것을 잊어 버렸다
바퀴 두 개만 있으면 좁은 길도 갈 수 있다는 그는
늘 집 밖에 생각을 두었다
차라리 잘 된 것일까
나무와 나무 사이를 맴돌던 그의 바큇살이
뭉클해지던 날,
나는 그를 애써 외면했었다
다시 돌아와야 할 지점을 둔 그의 몸에서
사슬이 덩그렁거렸다
바람 없는 날에는 그리움을 불어넣었다
식은 안장은 햇살로 데우고
빡빡한 날들에 기름칠을 했다
가야할 거리는 입력하지 않았다
늘 지나치던 골목을 지웠을 뿐이다
돌아오는 길목의 사슬을 풀어버린 후
나무와 나무 사이 길 하나가 생겼다
그 길로 내 마음을 싣고 간 이 누구인가

(그림 : 안기호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