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배월선 - 낙원상가 골목에서
누렁이 황소
2020. 3. 30. 22:27
길을 잘못 들었는지
음악을 찾아 골목을 한참 헤매다 보면
등엔 음표 대신 점박이 눈이 내린다
여기가 분명, 맞긴 맞는데
음악은 어디서 살 수 있단 말인가?
한 곡조 노래를 사러 갔다가
공짜로 커피 한 잔을 나눈다는
처음 보는 여학생이 시린 손에 쥐여주는
하얀 악보를 따라
온도가 부족한 사람들을 따라
나도 모르는 악보를 들고
36.5도로 꽉 찬 공터에 갔다
뜨거운 커피를 싸고 있는 종이컵에
점박이 눈이 내리고 눈은 나보다 먼저
입술을 적셔 언 몸을 녹였다
음악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장어 타는 냄새를 맡으러 소주잔을 기울이는
포장마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울컥, 어머니 생각나는 생 칼국숫집으로
도로를 가로질러 뛰어들었다
빈 병들이며 찌그러진 깡통들이며 라면 상자들이
수레바퀴를 마구 굴리며 굴러가는 곳
음악은 어디서 살 수 있단 말인가?
길을 잘못 들었는지
음악을 찾아 골목을 한참 헤매다 보면
등엔 음표 대신 점박이 눈이 내린다
(그림 : 이은황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