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복효근

복효근 - 쑥부쟁이 연가

누렁이 황소 2020. 3. 29. 17:01

 

그 가시내와 내가

그림자 서너 배쯤 거리를 두고

하굣길 가다보면

마을 어귀

쑥부쟁이 너울로 핀 산그늘에

가시내는 책보를 풀어놓고 아예

가을 다 가도록

꽃이 몇 송인지 한참이나 꺾다간

뒤도 안 돌아보고 가곤 했었지

 

저만치 뒤에 쪼그리고 앉아

가시내 스치는 손끝에 내 마음도 피어서

꺾이는 저 쑥부쟁이 꽃빛깔

꽃빛깔로 달아오르곤 했었지

 

세월도 그 가시내

무심한 눈길 몇 번 마냥 흘러서

마을 어귀 지날 때

시방은

누가 거기 홀로 피어 울고 있는지

쑥부쟁이,

쑥부쟁이 너울로 핀

산그늘에

(그림 : 한영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