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곽효환 - 야간열차에서 만난 사람

누렁이 황소 2020. 3. 26. 13:11

 

 

여수행 전라선 마지막 열차

자정을 앞둔 밤 열차는 우울하다

듬성듬성 앉은 사람들을 지나 자리를 찾고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올리고 긴 숨을 내뿜고 나면

일정한 간격으로 덜그럭거리며 출렁이는

리듬을 따라 차창 밖으로 불빛이 흘러간다

강을 건너 한참을 달려도 끝없이 이어지는 야경들,

틈새가 없다

문득 창밖으로

어디서 본 듯한 그러나 낯선 얼굴이

물끄러미 나를 보고 있다

나는 그에게

그는 나에게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무엇인가 곧 물을 것만 같은데

정작 말이 없다

흘러간 불빛만큼이나 아득한 지난날들에서

누군가를 찾는데

없다

나도 그도 아무도 없다

문득 대전역에서 뜀박질하며 뜨거운 우동 국물이 먹고 싶다

옛날처럼

(그림 : 임재훈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