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정군칠 - 눈의 사막

누렁이 황소 2020. 3. 26. 12:28

 

눈 덮인 산길 걷다보면 안다

누가 나보다 먼저 걸어갔는지

초승달 모양의 사구들이 발자국으로 남아 있다

사막, 수많은 사구의 그림자 안에 알몸인 내가

웅크려 있다 잔물결을 이루며 깊이 잠든 나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달콤한 잠을 깨울 수 없어

한 발자국 더 내딛지 못할 때

아득해진 정신 위로 쏟아져 내리는 여우별

알몸의 주름들이 서서히 펴지며

내가 지워진다

눈 덮인 산길을 걷다보면 안다

사막을 걸어온 메마른 시간들 위로

새로이 발자국을 만드는 바람

거기 내가 홀로 서 있다

(그림 : 강석진 화백)

 

 

Paul Mauriat -  Snow Dese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