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정군칠 - 산수국

누렁이 황소 2020. 3. 25. 17:39

 

 

산수국을 만나는 일은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제격입니다
산허리를 휘어감던 안개의 입자들이
송글송글 솟은 땀방울과 섞여
꽃으로 피어났나요
잘 붉어지던 볼을 감추기 위해
꾹꾹 눌러쓰던 교모(校帽) 아래 송송 돋아
고백성사라도 해야 나을 것 같던 열꽃들이
여태 지지 않고 있었나요
길을 따라 수로가 생기고
수로를 따라 한라산자락 꽃이 피었습니다
물을 좇아 피어나기에 수국이라는 이름을 얻었나요
아니면 낮은 곳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좇아 피어서
수국이라는 이름을 얻은 것일까요
가파른 산길 급히 오를 때에도
넉 장의 꽃받침은 분명 물방울을 튕겼겠지만
귀로 듣지 못하던 물소리
비로소 들리는 듯합니다

산수국을 만나는 일은
산을 오를 때보다 내려올 때가 제격인 것 같습니다

(그림 : 김한연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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