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문리보 - 들꽃

누렁이 황소 2020. 3. 25. 10:14

 


우리 할머니 타박타박 걸어가던 그 길에

발자국마다 뚝 뚝
배고픈 내 새끼 눈망울 같은 
초롱초롱 별꽃이 피었더란다
우리 아버지 후들후들 걸어가던 그 길에
발자국마다 뚝 뚝
옹기종기 삼남매 닮은
노오란 민들레가 피었더란다
내가 걷는 이 길은 
우리 할머니보다 우리 아버지보다 
아주 아주 조금만 팍팍한 것인데 
어째서 발자국마다 뚝 뚝 
꽃다지 냉이꽃 제비꽃
이 세상에 태어난 작은 풀꽃들은 아마도
앞서간 서러운 발이
뒤따르는 서러운 발에게
말하지 않아도 네 설움 내가 다 안다고
방울방울 
눈물로 피우고 간 염화미소(拈華微笑)더란다

염화미소(拈華微笑) :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을 담은 고사성어

(그림 : 이원진 화백)

 

 남택상 - Love Prayer (First Of M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