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이영식 - '작은 나무’가 달려왔다

누렁이 황소 2020. 3. 24. 13:36

 


네 살배기 꼬마가 달려왔다
엉거주춤 엎드려 받아 안은 내 품으로
함박꽃 한 다발이 뛰어들었다
함박웃음은 혼자 달려온 게 아니었다
손에 들린 바람개비가 딸려왔다
종종걸음 꽁지에 천사어린이집이 딸려왔다
빈 도시락이 딸랑거리며 딸려왔다
함박꽃 피워낸 햇볕도 바람도 딸려왔다
세상 별의별 꽃향기들이,
온갖 꿈 푸른 날개들이 딸려왔다
태어나 첫울음 터뜨린 뒤
고개 들고, 뒤집고, 기고, 앉고, 걷고…
일순 쉼도 없이 켜켜이 쌓아올린 생명책이
17kg의 살과 뼈를 품고 딸려왔다
주름살로 접힐 뿐인 내 저녁의 시간 앞에
‘작은 나무’가 한 그루가 달려왔다
영혼이 따뜻했던 날들을 다시 품고
한아름 함박꽃 웃음으로 핫핫
내달려오는 것이었다

(그림 : 손미량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