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최재경 - 닝기미, 어느 여름날

누렁이 황소 2020. 3. 19. 11:41

 

쏘내기가 퍼불라나, 다 저녁에 청개구리가 꽥꽥거리고 지랄났어
아직도 식지 않은 햇덩이는 서산에 한창인디
폐계 닭 사온다고 장에 간 까투리는 감감 소식이고
온 몸이 끈적거려, 찬 물 한바가지 껸치면 십상이겄는디
닝기미, 할 일은 지천이고 그냥 내팽기자니 그렇고
하여간에, 대충 끝내고 읍내 션한  생맥주 생각이 간절했어
 
비가 바람보다 먼저 달려와 쏟아지는디
장대비가 퍼붓는디
한 낮에, 대가리 벗어지게 뜨건걸 생각하면
집 나갔다 돌아온 여편네 보담 더 반가웠어
아 그란디, 이 비가 금새 그치질 안하고 솔찬히 내릴 모양새라...
 
막쐐주가 넘어가는디, 뜨끈한 것이 넘어가는디
목구멍에 내려가다 불이 확 붙어버리고 말았어
그리하여, 비가 오든 말든 마루에서 그냥 잠이 들었나봐
온 몸땡이가 하두 근질거리고 따끔거려 일어났더니
 
오늘도 혼자 잠이 들었던 모양이여, 닝기미...
근디, 누가 다녀갔나벼
접시 위에 말여
다 탄 모기향이 점선을 그리며 떨어지고 있었어
나도 그렇게 동그라미 타들어 가고 있었어.
닝기미..

(그림 : 서정도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