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홍일표 - 곡두
누렁이 황소
2020. 3. 1. 10:27
얼굴 붉어진 백일홍의 마음을 만지고 가는 손은 누구인가요?
물거울처럼 이제 눈 좀 떠봐요
댓돌에 앉아 젖은 그림자를 봄볕에 말리며 조속조속 조을던 곳
내 사랑 무성한 한나절 우리 둘이 몰래 숨어들던 골목 다 지우고 이제 보이나요?
내 안의 당신은 아직 스무 살, 배추흰나비 나를 간질이는 해 질 녘이었지요
눈 한 번 감았다 뜬 사이 당신이 다녀간 줄 모르고 집 앞에 서서 애꿎은 사리나무만 툭툭 분지르고 있었지요
무릎에 앉았다 날아가는 늦가을, 명부(冥府)의 어느 어름인지 짜울짜울 졸음이 오네요
거긴 아직 비 내리고 눈 내리나요?
당신의 잠 속에 낯익은 목소리가 민들레 꽃씨로 나는 게 보여요
볕이 좋아 향기로운 뜨락에는 당신이 놓고 간 계절이 있어요
아직도 누군가 몰래 들어가 혼자 살고 있는
곡두 : 실제로는 눈앞에 없는 사람이나 물건이 마치 있는 것처럼 보이다가 사라져 버리는 현상
(그림 : 남택수 화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