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시(詩)

유계자 - 오래오래오래

누렁이 황소 2020. 2. 29. 11:07

 

모래밭에 구령을 맞추는 갯메꽃이 있지

바다를 향해 쨍쨍하게 나팔 하나씩 빼어 물면

 

자갈자갈 거품 문 게들이 발바닥에 짠 내음을 불러들이지

먼 바다에서 아직 돌아오지 않는 안부를

뱃길 따라갔던 갈매기들이 가끔 물어 오지

 

외할머니가 가르쳐 준대로

갯메꽃 입술 가까이 대고 따개비 같은 주문을 외워

 

오래오래오래

 

숨 한 번 크게 들이쉬고 중얼거리면

메꽃 속에서 긴 밧줄을 타고 꽃씨 닮은 개미들이 줄줄이 기어 나오지

 

하나 둘 개미를 세며 기다려 줘야 해

외삼촌을 기다리는 외할머니 앞에선

 

그러는 동안 밀물이 찰싹찰싹 발등을 간질이지

눈물 비린내 묻은

 

오늘도 남은 사람들은 혼자 갯메꽃 주문을 외우며

물수제비를 던지지

퐁퐁퐁 물발자국 딛고 오라고

 

해가 지도록 오래오래오래

(그림 : 한순애 화백)